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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

간호사 태움, 아직도?

by 럭자 2024. 4. 22.

저는 4년 차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물과 물품, 기계 개수를 세고, 이전 근무자의 인수인계를 들으며 환자와 병동 현 상황을 파악하고, 상사가 지시한 업무와 의사가 처방 낸 처치를 수행합니다.

 

1명의 간호사가 약 10~20명의 환자를 담당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간호하고 나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마련입니다. 또, 교대근무를 반복하면서 체력은 계속 떨어집니다. 남을 간호할 게 아니라 나 자신부터 간호하라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간호사 업무는 참 고되고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업무만 해도 버거운 상황에서 간호사 태움 문화, 아직도 존재할까요?

간호사 태움 문화
간호사 태움 문화, 아직도?

간호사 태움이란?

간호사 태움이란 사람이 고통으로 활활 타다가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히는 것을 의미하는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보통 신규 간호사로 입사하면 프리셉터라고 경력이 많은 1명의 숙련된 간호사를 '프리셉터'로 붙여줍니다. '프리셉터-프리셉티'의 관계로 되어 병동마다 다르지만 1~3개월간의 훈련을 거친 후 신규 간호사는 독립하게 됩니다.

 

이런 훈련 과정에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알려준다,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괴롭히고 태우는 문화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간호사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도 4년 전 신규 간호사로 합격하고 입사하기 전에, 나도 태움 당하면 어떡하지, 어떻게 견뎌내지, 무조건 태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에 엄청나게 걱정했었습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주위의 지인들을 비롯하여 대학교 동기들과도 하나같이 간호사 태움이 심하다고 하던데, 너무 걱정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 입사하고 막상 병원에 가서 일하다 보니, 제가 일하는 거에 빠져서 태움이라는 것을 주위에서 들은 것에 비해 많이 겪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배우면서 혼나기도 엄청 많이 혼나고, 울기도 많이 울고, 억울한 일도 참 많이 생겨서 속상한 적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태움이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적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라고"

간호사는 병동에서 사용하는 기계나 물품들의 유효기간과 개수를 파악해야 하는데요, 응급상황이나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아야 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규 간호사로 입사하면, 처음 본 기계와 물품들을 보게 됩니다. 그 물품들의 유효기간이 어디에 적혀있는지, 이 기계가 어디에 사용되는지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출근하면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제일 첫 업무입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30분에서 1시간 일찍 출근해서 기계와 물품들을 확인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물품 1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병원을 10바퀴 이상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전 근무로 일하고 계신 선생님들께도 여쭤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용한 사람은 없었고, 물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배 간호사에게 보고했지만, 제 보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라고. 네가 알아서 찾아야지, 없으면 만들어서라고 와야지?"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화났지만 계속 물품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기들에게 부탁했고, 동기들도 같이 찾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보고했던 선배 간호사가 이미 찾았었고, 근무복 주머니에 일부러 숨기고 제가 찾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인수인계 들으며 담당구역에 있는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업무 준비를 하고 있으니, 전 근무자인 선배 간호사는 퇴근했습니다. 결국, 제가 겪었던 부조리는 이렇게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당장 튀어와!"

신규 간호사로서 3개월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프리셉터라고 불리는 선배 간호사가 뒤를 봐줍니다. 뒤를 봐준다는 말은 신규 간호사가 일하면서 놓치거나 실수하는 것을 선배 간호사가 뒤에서 처리해 주고, 해결해 준 뒤 가르쳐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1로 신규 간호사에게 선배 간호사를 붙여줍니다.

 

그런데, 제가 신규 간호사 시절, 쉬는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약속을 잡고 친구들과 놀고 있던 도중 병원 전화번호가 떴고, 전화를 받으니 "너, 00님 네가 봤지? 당장 튀어와."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가 끊겼습니다.

 

근무 중인 동기에게 전화했지만, 동기도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전화를 받지 못했고, 일단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가는 동안에 저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야 했는데, 안 해놓고 퇴근한 게 있었나?, 했는데 잘못해서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진 건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너무 무서웠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부서로 갔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화기애애하고 좋길래 잘못 부르신 건가? 했습니다. 갔더니, 정말 별거 아닌 일로 부른 것이었습니다. 분명 인계 시간에 전달했었고, 충분히 알아보면 확인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아니면 아까 전화했을 때 충분히 물어볼 수 있었던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쉬는 날에 병원까지 오라고 해서 자기 할 말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래, 이제 가라."라며 사과 한마디도 없던 그날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전혀 도움 안 되는 태움 문화

간호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태움 문화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신규 간호사라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가르쳐준다는 명목하에 태움 문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변명이고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한 번 알려준다고 해서 한 번에 다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작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강도가 높은 일이기 때문에 간호사 인력이 충분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인력의 소중함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을 계속해도 일이 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되지도 않는 위계질서를 강요하며, 트집 잡고 인격을 모독하는 비이성적인 태움 문화는 한국 의료 발전에 전혀 도움 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간호사의 업무 과중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계속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간호사는 내 몸이 3개였으면 좋겠다, 시간이 2시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한 명의 간호사가 봐야 할 환자 수가 너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 간호사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태움이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태움 문화가 자리 잡는 데 한몫은 했다고 봅니다. 즉, 간호사 업무 환경을 개선해 주면 자연스럽게 태움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