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무시당하는 간호사
제가 일하는 병동은 투석실입니다. 투석 환자 특성상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분들이 많습니다. 평균적으로 60대가 가장 많고, 40대부터 80대까지 연령이 다양합니다. 그리고 주 3회 투석을 받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은 병원에 옵니다. 가족들보다 자주 인공신장실 간호사와 만나고 대화하다 보면 간호사와 환자 사이가 점점 편해지고 환자에게 병원이라는 곳이 친근해집니다.
그러면서 간호사에게 반말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는데요, 간호사를 부르는 호칭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호사에게 "야, 저기, 아가씨"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손가락으로 까딱하며 오라고 손짓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환자들에게 다가가서 간호사라고 부르라고 하면, 환자들은 개의치 않고 다음번에도 야, 저기, 아가씨라고 부르거나 오히려 버럭 화를 내며 "오라고 하면 그냥 오면 되지, 어디서 토를 달고 있어! 오기 싫으면 오기 싫다고 해라."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화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마치 병원에서 간호사는 어떤 일이든 화내선 안 되고 항상 친절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환자는 아프고 예민한 사람이니까 무턱대고 짜증을 내고 화낼 수 있지라며 그냥 이해하라는 식으로 넘어가도록 유도합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일하다 보면, '이러려고 내가 간호사가 되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간호사
간호사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낸 처방 중에서 환자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거나 잘못 처방 낸 경우라고 판단하면, 처방을 거릅니다. 간호사는 의사에게 올바른 처방을 요구하고 다른 처방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검사 결과를 담당의가 직접 확인하고 그에 따른 추가적인 검사나 약 처방을 의사가 알아서 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간호사가 확인해서 보고하는 것이 당연히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의사는 검사 결과가 정상에서 벗어났는데 왜 보고 하지 않았냐며 간호사의 책임으로 전가합니다. 심지어 간호사가 확인하고 보고하려고 전화하면 전화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처방도 내지 않아 간호사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는 "이것 좀 봐달라, 어디 아프다, 아까 아프다고 이야기했는데, 왜 아직도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냐, 환자 죽는 꼴 보고 싶냐?"라며 간호사에게 한바탕 화풀이가 쏟아집니다. 환자가 건강한 상태를 갖게 하기 위하여 간호사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의료진은 매일 고군분투합니다. 모두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더라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람이 간호사만 되지 않도록 제발 서로 돕고 응원하고 존중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간호사는 서비스직이 아니라 전문직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간호사에 대한 연출을 보면, 간호사는 치마를 입고, 주위 간호사들과 일은 안 하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거나 실수투성이인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간호사는 치마를 벗어 던진 지 한 10년은 더 되었습니다.
치마는커녕 바지도 오히려 본인 치수보다 더 큰 크기의 근무복을 맞춥니다. 걸터앉을 때도 많고, 환자를 옮기거나 뛰어다니기 위해 여유롭게 근무복을 맞춥니다. 커피 마시고 떠들 시간은커녕 인수인계 시간도 총알 지나가듯 빠르게 핵심만 쏙쏙 짚어서 전달합니다. 환자를 보느라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할 시간도 없어서 생리적인 현상도, 배고픔도 참고 일합니다.
간호사라고 하면 아직도 인식이 친절한 미소, 단정한 옷차림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간호사는 서비스직이 아니라 전문직입니다. 머리망을 하지 않아서 단정하지 못한 용모를 가졌다고 해서 간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간호사는 질 높은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엄청나게 공부하고, 배우고, 다른 의료진들과 협력하며 매일 최선을 다합니다. 그중에 미소와 단정한 옷차림은 부가적입니다.
본질은 전문직 간호사로서 환자를 제대로 간호하고 보살피는 것입니다. 간호사가 행복해야 행복한 간호가 제공되고 환자도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도, 보호자들도, 다른 의료진도 더는 간호사를 서비스직이 아닌 전문직으로 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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